종교개혁에 대한 제고
1517년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고
21세기 2004년 5월을 살아가는 현재의 기독교인들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하나님 말씀에 조명해 보고 우리의 사명을 찾고자 한다.
종교개혁의 배경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의 마키아 벨 리가 종교단체와 공화국들이 건강하게 장수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거듭 거듭 출발점 (Beginnings) 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되어 300년 동안의 극한 박해를 극복하고 콘스탄틴의 국교화로 인해 귀족화의 길을 걸으면서 신앙의 순수성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종교개혁 당시의 중세 교회에 이르러 교회는 그 타락이 극에 달하면서 종교개혁을 불러오는 역사적 흐름과 만나게 된다.
15세기 종교개혁의 씨앗
신앙적으로는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종교개혁의 씨앗들이 발아하게 된다.
15세기에 이르러 후기 주지주의적 스콜라 신학이 이성과 신앙의 분리로 쇠퇴하고 있었는데 에크하르트, 타울러,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저작한 토마스 아 켐피스 등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순수체험의 영적 신비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스콜라 신학에서 경험하지 못한 신앙의 생동감과 역동감을 체험하면서 15세기 신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러한 영향은 교황청의 분열과 부패에 대한 개혁 움직임이 일어난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영국의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후스였다.
이들은 교황의 절대성에 항거하여 교황권이나 황제권의 근원은 모두 하나님이기 때문에 교회는 재산을 가져서는 안되고 교회진리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처형되고 개혁은 실패로 끝난다.
하나님께서는 창세때부터 땅에서 부르짖는 아벨의 의로운 피의 호소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이 지금 심는 의로운 신앙이 여러분때 열매를 맺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영혼의 호소를 기억하시고 반드시 갚아주시는 분이시다.
지금 비록 신앙에 대한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낙심 말고 끝까지 의롭고 성실한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15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도 종교개혁에 한몫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면서 고전연구와 인문주의로 대표되는데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시도하면서 인간을 교회의 제도적 권위 아래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운동들이 그것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하여 교회안에 특별은총으로도 역사하시지만 교회밖에 세상의 일반은총으로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사역이 최선의 결과를 이루시게 하시는 분이시다.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교회안에서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 교회밖에 세상일을 통하여서도 역사하시어 여러분을 돕고자 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우리나라를 세계선교의 전진기지로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인터넷이 세계1,2위의 활용도를 보이는 것도 인터넷을 통한 선교의 비전이 계신다.
그러므로 지금 경제가 어려워도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만 서면 하나님께서 경제 어려움의 돌파구를 열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16세기 종교개혁의 횃불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 들어서 보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아비뇽 교황의 대립으로 생긴 분열 결과, 14세기경부터 그 안팎에서 쇠퇴의 기미를 보인다.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공의회(公議會)운동이 활발히 추진되어 피사·콘스탄츠·바젤 등지에서 공의회가 열렸으나 문제의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무위로 끝나게 된다.
한편, 프랑스·영국 등 유럽 각국은 근대 국민국가로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는데. 교황청의 착취를 가장 심하게 받은 독일이 교황청에 대항한 루터를 보호하면서 종교개혁이 성공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종교개혁은 마인츠의 대주교 교회의 알브레히트가 재정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판 면죄부에 대해 그 성사적 효과를 신학적으로 문제삼아 면죄부(免罪符)에 관한 95개조 논제의 항의문을 비텐베르크대학의 성(城)교회 정문에 게시함으로써 올려졌다.
이것이 루터 자신의 예상을 넘어 유럽 전체에 파급되는 대운동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 싸움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 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루터는 당시의 주류학파인 스콜라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 체험을 중시하는 오컴신학을 공부하고 수도회에서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의 영성을 훈련했다.
사람이 많이 지지하고 세력이 강하고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하나님 편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있는 한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편의 사람이 적다고 개혁 못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의 개혁 요지는
첫째 그리스도교의 유일한 근거는 성경에 있는 것이지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마가복음 7장 9절 13절에서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세운 전통을 보면 어떤 한 시대에 아주 유익을 주는 신앙 규범들이 있다. 그러나 사람이 세운 규범은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신앙생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성경보다 사람의 규범을 더 위에 두고 고집하는 경우를 본다.
둘째는 개인의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으로 교회의 성사와 같은 외적 행위는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앙은 기독교만이 지니고 있는 유일한 고백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종교이나 기독교만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신 종교이다. 여러분의 인격이 부족해도 믿음이 적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찾아오시어 구원하시는 분이시다. 내 자신이 보잘 것 없이 느껴져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존귀하게 대접해주시는 분이시다.
셋째는 죄의 사함은 사제의 사함이나 개인의 죄에 대한 보속과 같은 인간의 행위로는 용서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용서받는다는 주장이다.
당시 종교개혁의 직접적인 효시가 된 사제의 면죄권에 대한 반격이다.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외에는 없다. 카톨릭에서는 신부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고백성사를 하면 죄를 사해주면서 신앙과 선행에 대한 신앙적인 과제를 주는데 이를 보속이라고 한다.
그런데 루터는 이러한 보속을 하면서도 자신의 죄가 사해졌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성경을 읽는 중에 롬 1: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마음에 불같은 뜨거움을 체험하면서 성경에 대한 확신 가운데 로마 교황청에 반기를 들게 되는 동기가 된 것이다. 여러분의 죄와 허물도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 어떠한 죄라도 용서해주신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이지만 용서받은 죄인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짚고 넘어갈 부분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로 결심하면서도 육신의 연약성과 제한성 때문에 알면서도 때로는 모르면서도 죄와 허물을 범하게 되지만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통회해야 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생활이 따라야 한다. 루터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 개입은 절대 부인하고 하나님의 주권만이 인정하여 오직 성경으로만 ,오직 믿음으로만, 오직 은총으로만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