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와 관계
많은 신자들이 살면서 실패를 경험한다. 사탄이 하나님보다 능력있기 때문인가? 하나님과의 싸움에서 그가 이기고 있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연합과 교제의 차이를 본다. 다른 말로 하면 관계와 사귐이라고 할 수 있다.
요한복음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생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성품이다. 누가 얻는가?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준 사람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영생을 어떻게 얻는단 말인가?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설명하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만약 우리가 바울의 계시를 가지지 않았더라면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가르침에는 이 거듭남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자신이 영생을 가지고 왔고 우리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또는 사람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를 자신의 주로 고백했다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곧 죄, 영적죽음, 사탄과 연합함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것은 엄청난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과 우리를 화해시키셨다.
우리와 아버지 사이에 있던 것들이 제거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 우리 속에 들어왔다. 옛성품은 밀려나갔다. 아담이 동산에서 육신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었듯이 우리는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 만들어진 영적존재가 우리 속에 들어왔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가져오시겠다던 영생을 나누어 주었다. 생명이란 단어 "조에"는 하나님의 성품임을 기억하라. 그렇다면 새피조물은 하나님의 성품 위에 세워졌다. 에베소 4:23,24,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영으로 너희 마음을 새롭게함 받아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새피조물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이다. 그는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새성품을 주셨다. 원수에 의해서 지배되었고 원수의 한 부분이었던 실패, 죄의식의 옛성품은 그쳤다. 그리고 새로운 성품이 대신했다. 우리는 이제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 된 것이다.
롬 8:14∼16이 실체가 되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는 아들이 되었노라)." 누구든지 성령이 자신을 인도하도록 한다면 새피조물의 삶으로 인도될 것이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니." 이것이 우리 관계의 사실이다.
그 다음의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는 새피조물이 되었을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를 가진 새피조물이라는 것이다. 로마서 3: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자녀가 되었을뿐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해 그가 자신을 주시는 자녀가 된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자신을 주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는 자녀들의 힘이요 의로움이 된다.
의가 무엇인가? 아버지 앞에 아무런 죄의식이나 열등감 없이 설 수 있는 능력이다. 사탄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의 앞에 주인으로 선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예수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사탄의 지배자가 된다.
이제 우리는 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영생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녀의 의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위대한 능력의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 몸을 자신의 집으로 삼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새피조물의 궁극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 창조되어 우리 몸이 하나님의 전이 되었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 모든 것이 사실일지라도 아직도 기쁨의 비밀을 배우지 못했다. 요한복음 15:10,11,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그 바로 앞 절에서 또 다른 비밀을 발견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우리는 사랑 안에 행하고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요한복음 13:34,35은 새피조물의 법을 보여준다. 새피조물을 지배하는 법은 사랑의 법이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기독교 신앙의 비밀을 알게 되기까지는 이 말씀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 비밀이란 우리 영이 기쁨을 갖는 것이다. 사도행전 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베드로전서 1:8에는 이것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으로 충만한 기쁨이라고 한다. 새피조물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내 기쁨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것은 세상이 절대로 빼앗아갈 수 없다. 우리의 영을 채우는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기쁨이 어디서 나오는가? 비결이 무엇인가? 고린도전서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즉 교제가 비결이다. 그로부터 기쁨이 나온다. 교제가 끊어지면 기쁨은 사라진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이 놀라운 관계에서 얻어지는 모든 부요함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와 교제가 끊어지면 우리의 삶에는 기쁨이 없다. 공허하고 메마르다. 우리가 하는 사역의 능력은 교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