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언약(berit)이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5. 7. 12:15

사랑의 약속

 

이스라엘 백성들은 긴 역사를 통하여 곤고와 눈물이 가시는 때가 없었다.

더구나 온 민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할 때에는, 그 억울함과 고달픔 속에서 저들은 다만 하나님의 도우심만 믿고 있었다.

그들이 힘들고 초라한 백성으로 눈물겨운 생활 속에서 오직 믿고 기다린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한 위대한 사람을 보내서 약한 민족의 운명을 수습해 주고 억울한 백성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이스라엘 백성의 고달픔을 해소해 줄 것을 굳게 믿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메시야를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약속을 희망으로 삼고 어려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들을 하고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농담처럼 '약속은 깨어지라고 있는 것이라'하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하지만 한 번 약속을 어기게 되면 다음부터는 신임을 잃게 된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약속이라는 것은 사람됨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약속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또한 자신이 없을 때에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언약(berit)이란 히브리말로 족쇄를 채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상대방을 위하여 서로 어떤 일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결속관계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약을 해주셨고 우리는 늘 그 언약의 의미를 되살려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유(sigela, 보물)로 여기시며(출 19:5), 마음속에 거룩한 법을 허락하셔서 주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다.(렘 31:31∼37)

언약의 사자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우리는 소월의 시처럼 다른 이들에게 원한의 꽃길을 뿌리지 않는가? 주님은 바로 인생의 등불(시 18:28)이 되어 바른 길을 가게 하시고, 구원의 길을 향해 인도하시지만 우리는 간혹 길 잃은 양과 같아서 길을 헤매다 어려움에 처해서 울부짖는 어린양과 같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갈 뿐만 아니라 진리의 인도자가 되어 모든 이들에게 덕과 기쁨을 끼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살전 5:11, 15) 좋은 지도자는 후배를 키우는 자요, 차세대를 위한 길을 예비하는 자가 되어지지만 불의한 지도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까지 고통을 준다.

모세는 여호수아와 같은 좋은 지도자를 배출했고, 엘리야는 엘리사를, 세례 요한은 주님의 길을 예비했으며, 바울은 디모데와 같은 영적 자녀를 낳았다.(딤후 1:13∼14)


우리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들에게 에덴에서 약속을 주셨다. 바로 여자의 후손을 주시겠다는 것이었다(창 3:15). 그 여자의 후손은 사단의 결박에서 백성들을 구원할 자였다.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구약의 역사를 이끌어 가셨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는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다. 또한 타락한 인류에 대한 극진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오늘 본문의 내용 역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구속사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곧 임하시게 될 그리스도를 예고하여 주고 계시는 장면이다. 이 예고 역시 대망의 메시아에 대한 예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