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 (2)
성도에게 있어 "기도의 제목"은 주어진 삶의 모든 것입니다.
성도의 모든 기도는 궁국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복음의 메시지이며,
그 전파 내용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을 통하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지상에서의 하나님 섭리의 궁극적인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지리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즉, 땅 밑에는 지옥이 있고,
하늘 저쪽에는 천국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는 '바실레이아'란 단어 속에는 이런 지리적인 의미보다는 '통치'라는 개념이 더 강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인간들에게 임한 것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눈멀고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시며 당신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기도야말로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모범 기도이며,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 "호흡"이라고 하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두번째 시간으로 성도는 "직분 감당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보다 깊이 상고하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들이 자기가 맡은 직분을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다른 직분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여 줄 것을 명령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
기도에 관해 사도 바울은 항상 기도에 힘쓰며,
늘 깨어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가 깨어 기도할 것을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일행"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바울 일행이 전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도처에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들이 있습니다.
성도는 바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의 직분을 주시는 일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도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직분이 그렇게 손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선의 노력을 한다 해도 때로는 생각지 않은 시험이 닥쳐와 그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직분 감당은 성도들에게 중요한 기도 제목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함으로써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성도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사명인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사명 감당을 위해 어떠한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 감당을 위해 "능력"을 간구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만일 하나님께서 능력을 공급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무것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회심 전 바울은 유대교에서 매우 촉망받는 젊은이였습니다.
바울은 헬라 철학을 체계적으로 배웠으며 유대교에도 매우 정통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졌음을 볼 때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여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스데반의 순교 증인이 되었던 점이나,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갈 공문을 청해 얻었던 것을 보면,
바울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능히 성취감을 맛보았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 아니고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한 것을 보면 교회 직분의 특성이 어떠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능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 또한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실 때 우리가 지닌 능력 이상의 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 감당을 위해 "인내"를 간구 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인내와 끈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명 감당을 위해 부끄러움과 고통을 이겨내셨듯이(히 12:2),
우리도 어떠한 순간에도 사명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나버리지 않도록 끈기와 인내를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이 말씀은 지혜가 없이는 하나님의 직분을 감당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 지혜는 세상이 주는 간사한 지혜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순결한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되, 결코 꾸짖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약 1:5).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가질 때,
비록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는 미련하고,
보잘 것 없는 성도이지만,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지혜 있고 능력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고상함을 인하여 모든 학문과 지식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듯이, 우리들도 그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 구하여 하늘의 지혜를 얻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과 결부된 다른 사명자들을 위해 간구 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지닌 직분은 세례요한과 같이 광야에서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지닌 직분은 저마다 나름대로 독특성과 독립성이 있지만 전체 교회와 따로 떨어져 있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직분은 유기적인 신체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만 잘 한다고 해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분과 깊이 연관이 있는 사명자 역시 잘해야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웃한" 직분자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가 하나님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도록 간구 해야 합니다.
그와의 사이에 마찰이 일지 않고 아름다운 결합을 이루어, 보다 완벽하고 충실한 직분을 감당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 주도록 간구 할 것을 부탁 받고 있는 골로새 교회가 어떤 교회입니까?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골로새 교회는 바울이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교회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들에게 직분 감당을 부탁한 것은 성도들에게는 세계의 모든 하나님의 직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물며 같은 교회의 직분자, 그것도 자기의 직분과 깊이 관련된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간혹 이웃한 직분자들에 의해 우리의 여린 마음이 상처 입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하는 기도를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처럼 나약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깨끗한 직분자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더럽거나 상한 그릇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몬 베드로는 한때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는 "상한 그릇"이었지만 회개한 후에는 하나님께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는 쓰시기에 합당한 직분을 원해야 합니다.
큰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도 있고,
큰 그릇 작은 그릇도 있습니다.
용도별로 다양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그릇이 귀하고 천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와 사회에 덕이 되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