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 최고의 사랑
유대인들에게는 613개의 율법조항이 있었다.
그 중 248개는 하라는 계명이었고 365개는 하지 말라는 금령이었다.
그들은 이 율법이 하나님과 모세로부터 나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등한 구속력과 절대적으로 지켜야할 당위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많은 율법을 두고 의견도 분분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에 대한 심각한 논란이 있었다.
율법을 전공하고 가르치던 율법 교사들의 질문은 자기들만이 율법을 통달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떠보려는 질문까지할 정도로 당당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태초부터 사람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이 땅에 내어 주시고 십자가에 죽게까지 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의 사랑을 본받으라고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 초청하셨다.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까지 주님은 강조하셨다.
사도 요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관계를 확실하게 해 주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 14:19∼20)
사도 바울 역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라는 사랑의 찬가를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
사랑하는 사람은 분병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람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저마다 사랑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렇게 사랑에 대하여 말했다.
"언제나 가까이 하려는 것이 사랑이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그러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지으시고 심히 좋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자신의 만족과 이익을 위하여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버린데서 문제는 출발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인류는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인류에게 구원의 소망을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전적인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악 가운데 살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하여 아들을 보내 주셨다.
이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예수님께서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여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
온갖 고난을 담당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아무런 쓸모 없는 우리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것이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사랑인가!
이보다 더 큰사랑은 이 세상에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만이 최고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