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거듭나지 아니하면 - 요 3:3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7. 14:53

시편기자는 "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 것을 보면 신묘막측(神妙莫測)하다고 고백하였다. 어머니 태 속에서 그냥 자동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오장육부 하나하나를 모두 지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고 뜻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육축이나 짐승들이 창조된 과정과 비교해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에 땅은 각종 동물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지 않다. 먼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계획하셨고 그 계획에 따라 흙으로 빚어 만드신 후에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이처럼 인간이 가지는 독특성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영성과 도덕성과 사회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 마음속에 이런 성품을 넣어주셨다. 그래서 위대한 물리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스칼은 말하기를 "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피조물에 의해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금수(禽獸)와 버러지 형상으로 바꾼 것은 하나님께 대한 최대의 모욕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엄격히 금지하신 것이다(출 20:4∼5). 그러나 하나님은 내버려두셨다. 로마서 1장을 살펴보자.
먼저,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셨다. 그랬더니 성적 문란에 빠지고 말았다. 대부분의 이교 신전에서는 여사제들이 있어 그들과의 음란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런 행동이 단순히 육적인 쾌락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신과 가까워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저희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성령의 전이다. 따라서 음행을 피하라고 경고하셨다(고전 6:18∼19). 주와 연합하는 사람이 창기와 연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하셨다(고전 6:9∼10).
또한,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두셨다. 짐승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짝짓기를 한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사람들처럼 돈을 주고받으며 성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들이 짐승보다 더 추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런 부끄러운 욕심을 그냥 내버려두었더니 이제는 변태성욕자들이 생겨났다.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부끄러운 일을 한다(창 19:4∼9). 하나님은 이 그릇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성병이나 에이즈 같은 상당한 보응을 내리셨다.
그래도 저희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자 하나님은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 이 부패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21가지 죄악을 보라(롬 1:29∼31). 문제는 이런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자랑하고 두둔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이 더렵혀진 실상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만물의 영장이 금수만도 못한 사람으로 전락한 것이다.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먼지를 뒤집어쓰고 들어온 사람이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달려드는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아니다. 배가 고프지만 저녁을 먹는 일도 아니다. 맨 먼저 세수를 하고 땀과 먼지를 씻어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죄로 인해 하나님의 본래 형상이 더렵혀진 사람이 맨 먼저 해야하는 일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것을 성경은 중생 혹은 거듭남이라고 한다.
'거듭'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노덴'은 ①'처음부터', '완전히', '철저히'의 뜻과 ②'다시', '두 번째'의 뜻 그리고 ③'위에서부터' 곧 '하나님께로부터'의 뜻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기도, 제사, 세례로써 유대교에 개종하면 그를 중생한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선택받은 백성인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에 의해서, 어느 한 부분만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본성이 새롭게 되는 사건(Calvin)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1. 천국에 들어갈 자는 누구인가?
어느 날,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클까요?" 그러자 예수님은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말씀하셨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자신들은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고 얘기를 꺼낸 제자들은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는가? 특정한 '아이'가 아니라 일반적인 '아이들' 말이다. 순전하고, 정직하고, 착하고, 부모를 의지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젖병을 물고 있다고 어린아이들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방법은 한 가지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천국에서 큰 자는 '이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지만, 천국에 들어갈 자는 '모든 어린아이들'처럼 새로 태어나는 사람이다.

2. 그러면 어떻게 태어날까?
어느 날, 밤중에 니고데모란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대인의 관원 즉 70인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었다. 니고데모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 받은 훌륭한 랍비에게서 율법을 전수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또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일 만이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바리새인이었기에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율법을 검증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의 가르침보다 먼저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하셨다. 율법을 아무리 배우고 지키려 한다 해도 거듭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커녕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없다고 하셨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자부해 온 니고데모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어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하고 계속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니고데모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대의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학식을 자랑하고 신앙의 경륜을 내세우면서 자신의 경험과 이성만을 앞세워 살아가고 있는 신자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거듭나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은 신비한 일이다. 마치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하심도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역사가 이성적으로 깨달아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분명한 사건이다.


3. 변화된 사람의 모습은?
어떤 사람이 교회를 다니는 신자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친구가 찾아와 빈정대듯 물었다.
"그래 자네, 예수를 믿는다지?"
"그렇다네. 나는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네."
"그럼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이 알겠군. 어디 좀 들어보세. 삼위일체라는 말은 무엇인가? 설명을 좀 해보게."
"글쎄, 잘 모르겠는걸."
"그럼 그리스도는 설교를 몇 번이나 했지?"
"잘 모르겠는데…"
"그럼, 수많은 사이비 종파들은 어떻게 된 거지?"
"글쎄, 나도 마음이 아프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는걸."
"아니 자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고선 그리스도에 관해 아는 것이 없잖아!"
"자네 말이 맞아. 아닌게 아니라 나는 별로 아는 것이 없네. 부끄러워. 하지만 이 사실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지. 3년전, 내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을 때는 난 주정뱅이였고 빚도 많았고 내 가정은 산산조각이 되어가고 있었지. 저녁마다 처자식들은 내가 집에 오는 것을 무서워했지. 그러나 이젠 술도 끊었고 빚도 갚았고 우리 가정은 참으로 화목해졌지. 저녁마다 아이들은 목이 빠져라 나를 기다리고 있게 되었거든. 이게 모두 그리스도가 나에게 이루어주신 것일세. 또한 나는 지독한 죄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고, 또한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지."
중학교 1학년 성경교과서에 나온 이야기이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의 여인을 보라.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수님을 만났다(요 4:28∼29). 그녀는 더 이상 새 남편을 찾아 헤매는 옛날의 자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천국을 향해 나가면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했느냐 물으시기 전에 거듭났는지 물으실 것이다. 미국인이 한복을 입고 한국말을 잘하고 한국인 흉내를 낸다고 해서 한국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야 진정한 한국인이다.
그래서 바울은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다고 했다(골 3:9∼10). 옛 사람의 행위를 벗기 전에 먼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새 사람에 맞는 새 사람의 행위가 뒤따르는 것이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기 전에는 지금까지 해 온 봉사생활이나 기도생활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학교에서 해프닝이 벌어졌다. 3학년에서 과대표로 뽑혀 올라온 학생의 학적부가 없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이 학생은 2년 전 이 대학에 응시하여 떨어졌지만 부모에게 차마 말씀 드리지 못하고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리고 다른 학생과 똑같이 책을 사고 학교에 나갔다. 일 학년 신입생들인지라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인사를 하고 2년 동안 함께 공부했다. 교수들도 당연히 우리 학교 학생이려니 했다. 출석도 불렀다. 학점도 주었다. 워낙 착실히 학교생활을 한 것이 문제이다. 3학년 과대표를 뽑을 때 모든 학생들은 학생 아닌 학생을 과대표로 뽑았다. 자신도 2년 넘게 다니다 보니 미등록 학생이란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었나 보다. 그러나 그는 역시 그 학교 학생이 아니었다. 그렇다. 공부 잘하고 착실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학적부에 등록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