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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과 치과 임플란트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7. 12:07

요즘 신문 지상에 자주 등장하는 생명복제에 관한 기사들을 보면서 바벨탑을 생각한다.

생명의 영역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모습에서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나님이 생명체를 만들었는데 인간이 흉내를 내고 있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바벨탑과 같은 운명을 맞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러한 징후가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최초의 복제 양 돌리의 경우 조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치과 영역에서도 이와 관련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질병으로 인하여 소실된 치아를 수복하기 위해 인간은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고대 이집트 문명이나 잉카 문명에서 사라진 치아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발굴된 유골에서 보철물을 관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양 옆의 치아에 지지를 얻어 동물의 뼈, 치아 또는 나무를 걸쳤던 자국을 볼 수 있다.

사라진 치아를 대신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재료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치의학적 관점으로 보면 그러한 수복들이 기능을 했으리라고는 전혀 보여지지가 않는다. 그냥 없어진 치아를 만들어 넣는데 그쳤다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보면 된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치아를 복원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들이 계속되어 왔다.

 미국의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워싱턴의 경우에도 틀니를 사용했는데 이는 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현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단순히 사라진 치아를 만드는 차원에서 기능까지 수복하는 쪽으로 질적인 향상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개념들이 정리되면서 현재 행해진고 있는 치과치료가 완성되었다. 즉 치아의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한지는 100년도 채 안된 것이다. 치아의 기능을 회복함에 있어서 치과의사의 욕심은 이제 절정에 달해있다. 없어진 치아의 기능을 회복함에 있어서 남아있는 치아를 이용하던 것을 이제는 극복하게 됐다.
바로 '임플란트'가 치아들을 구하는 첨병이 된 것이다. 사라진 치아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양 옆의 치아를 이용해야 한다. 하나의 치아를 수복하기 위해서는 아무 죄 없는 멀쩡한 치아 두 개를 불구로 만들어야 한다. 불구가 된 두 개의 치아는 제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중간에 사라지게 된다. 즉 하나의 치아를 수복하기 위해서 두 개의 치아가 불구가 되고 그 역시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에 사라진다는 것이다. 치아를 해 넣기 위한 작업이 치아를 뽑게 만드는 작업이 되기도 한 아이러니이다. 그러나 '임플란트'가 이 문제를 쉽게 해결했다. 사라진 치아가 존재하던 잇몸 뼈에 인공치아르 심게 되므로 양 옆의 치아는 불구가 되는 운명을 면하게 되고 제 수명을 다해 입안에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사라진 치아를 수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자리에 치아가 하나 더 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구치가 한번 빠지면 다시는 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아마도 치과의사들이 굶어 죽지 않게끔 배려한 탓이리라. 빠진 치아들이 끊임없이 나면 인간들이 나태해지고 오만해질까봐 그렇게 한지도 모르겠다. 세포생물학과 발생학이 발달하면 잇몸에서 또 하나의 치아가 나게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바벨탑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바벨탑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임플란트가 치아를 구원할 것이고, 임플란트는 현재 인간의 능력으로 만든 치아 수복물로는 가장 이상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