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

기도의 본질 - 무엇을 구할 것인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4. 09:56

기도에는 응답이 되는 기도가 있고,
응답이 되지 않는 기도가 있다.

 
응답이 되는 기도는 기도하는 당사자가 바른 자세에서 기도하는 경우이며,
응답이 없는 기도는 동기가 불순하거나 기도하는 태도의 하자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도 의심하여 불안해 하고,
초조하게 지내는가 하면,
어떤 분은 응답을 받지 못하고 받은 것처럼 스스로 속고 있는 자도 있습니다.

이는 지금 내가 "무엇을 구하였는가?"를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명하는 기도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까?


기도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 나라에 펴는 것이라기보다는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는 것과 같이 "하나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경에서 우리에게 "구하라"는 기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맏으시오며"라는 간구를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의 첫머리에 두신 것은 "성도들의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를 밝히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생존의 최대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다른 어떠한 요구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간구 앞에 올 수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욕구에 지배를 받아야 하며,
다른 모든 욕구는 여기에 종속되어 따라와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과 대치되고 모순되는 간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피조물로서·은혜를 입은 자로서 마땅히 드릴 기도입니다.

한편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할 하나님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 스스로 계신 언약의 하나님
엘로힘 : 전능하신 하나님
엘솨다이 : 존귀하신 하나님
여호와 이레 :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라파 :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 :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 삼마 : 상황과 현실 속에 계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 : 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치드케누 : 우리의 이로움이신 하나님
여호와 로이 : 길을 잃고 방황하는 양떼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인격 전체"를 대변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같은 하나님의 이름들은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권세,
하나님의 언약"을 함축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든 성경이 증언하는 바입니다.
즉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성품·언약·교훈 등이 인간과는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간들도 "선·사랑·의·진리"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속성을 하나님과 비슷하게 지녔다고 해서 "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는 "영원·전지·전능·완전·무소부재"와 같은 신적인 속성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거룩한 속성이기에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이같은 여호와의 이름을 어떻게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만이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말씀은 "과연 우리가 악하고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 주어진 말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 기도문은 "여김을 받게 하라"로 바뀌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
하지만 이 기도를 우리에게 드려야 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강한 욕구를 채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본질적으로 할 수 없다고는 해도 그 마음은 가질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강렬하게 가질 때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믿고 의지할 때 거룩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올 때 거룩해집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레 10:3)
우리의 귀한 것을 드릴 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집니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예물을 가지고 그 궁정에 들어갈지어다"(시 96:8)
영광을 내가 취하지 않고 주 앞에 돌릴 때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시 115:1)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주님의 이름이 거룩해집니다.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처럼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고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오며,
하나님께 귀한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착한 행실을 할 때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성도들의 기도에 깔린 염원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믿음과 의무가 응축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일반 자녀들도 그 어버이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원하며,
어버이의 이름을 존경하며, 삶의 근거로 의뢰합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버지의 이름을 존중하고,
의뢰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야 하며,
모든 기도의 본질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고, 이같은 삶을 살면서 이렇게 살기를 더욱 결심하며, 과거에 이렇게 살지 못하였음을 회개하고 자복하여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이어야 합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라는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할 나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들의 학문적 연구나 과학의 발달 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사 이래로 이 땅에는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불의가 있어 왔습니다.
인간들은 철학, 윤리학의 연구과 법의 제정 등으로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불의와 부조리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 땅에서 불의와 부조리가 사라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불의와 부조리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서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의 역사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작은 것부터 점점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마 13:32).
"회개하여 심령의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성령 받아야 합니다(롬 14:17).
기도하여 권능 받아야 합니다(고전 4:20).
복음 전파를 하여야 합니다(행 1:8).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골 4:11).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마 6:33).
뿐만 아니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 믿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
"거룩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니라"(살전 4:3)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벧전 3:17)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기도하여야 합니다.
옛 사람의 자아를 부인하여야 합니다(막 8:34; 갈 5:24).
하나님의 명령에 자신을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요 4:34).


우리는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내기 위해 경쟁하듯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의 잔을 물리쳐 달라는 청원을 드렸지만 그러나 그러한 청원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서는 안 된다고 간구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드린 기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담긴 십자가의 고난을 거부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다스려 달라는 청원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난이 사실은 우리의 욕심에서 기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성도들이 지향해야 할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나 충족시키는 방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구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 동안 가졌던 기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말끔히 불식시켜야 합니다.

이제 우리들은 내적인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거의 습관적으로 일어나는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려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써 다스려 주시도로고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반대하는 뜻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거부하며 반대로 하나님의 뜻에는 지체없이 순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다스려 주시도록 기도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 자초할 모든 고난에서 구원함을 얻고, 가장 복되고 평안한 삶,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