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예수님의 고백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4. 09:10

"그가 말씀을 보내 병을 고치시며"(시 107:20) 그리고 로마서 8:11,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여기 그의 말씀이 양식이요 능력이요 건강이다. 그의 말씀이 모든 요구를 충족시킨다. 마태복음 4:4,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이 말씀을 먹고 그것을 추구하며 우리의 마음은 이것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것이 건강이 되고 힘을 주고 고친다.

이 말씀이 얼마나 많은 것을 주는가.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요 6:38). 우리는 아버지의 뜻이 어려운 것이리라 생각하고 그로부터 움추려든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에서 나오는 뜻이다. 아버지의 뜻 안에서 행한다면 우리는 빛 속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다. 우리의 말은 사랑으로 넘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빛 속에 행할 것이니 그의 뜻이 곧 빛이기 때문이다. 그의 뜻이 사랑이기에 우리는 사랑 안에 행할 것이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이제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행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는 우리 마음에 말씀하신다. "나를 따르는 자는 아버지의 뜻 안에 행할 것이다. 그는 절대로 그 뜻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51). 영적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실이다. 영적 굶주림도 육체나 정신의 굶주림처럼 실제적이다. 영은 예수를 먹는다. 마음은 사랑을 먹는다. 사랑이 들어와 만족하고 쉼이 있을 때까지 마음은 굶주린다.

사랑은 중생한 사람의 영으로부터 솟아난다. 그리고 이 중생한 사람의 영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는다. 영이 사랑-예수를 먹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방의 사랑을 먹듯이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는다. 그는 우리 영에 산 떡이요 살아있는 물로 우리의 목마름을 풀어준다. 모두 그의 충만함으로 받았다. 그의 사랑-생명, 그의 은혜-생명, 그의 인내와 고상함을 우리가 받았다(골 2:9∼10).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다. 우리는 그의 능력을 받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삶의 긴장 속에서도 설 수 있는 우리의 힘은 사랑이다. 이스라엘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인 만나를 먹었다. 우리는 강한 사랑과 강한 은혜를 주는 떡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무서운 고통과 고뇌 속에 강하게 서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의 의로 인해 우리를 핍박한다. 그들이 그러는게 아니라 그들 속의 마귀가 그렇게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의의 의식으로부터 움추린다. 그들은 우리가 자신들의 주인인줄 안다. 그래서 우리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능력의 떡--이 말씀--을 먹는다. 우리 전체가 그의 생명으로 포화상태가 되어 승리를 주고 그 승리로 충만하여 그와 하나가 된 느낌을 줄 때까지 우리는 그 말씀을 소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은 그것이 우리 속에 있음을 인식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 말씀을 믿고 그가 우리 속에 계심을 깨닫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상한다(요 14:17).

하나님을 안에 모신 마음으로 모든 생각을 하라.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1:4)는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이 귀절의 앞 부분이 중요하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다." 마음 속에 반복해 이 말을 속삭이라. "나는 하나님께 속했다. 나는 지배자다. 나는 정복자다. 나는 하늘의 떡을 먹는다. 나는 하나님의 비타민을 받는다. 그들이 나의 신앙을 강하게 해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는구나!"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이보다 더 매일매일의 삶에 대해 강하게 말씀하신게 없다. 만약 그를 사랑하면 아버지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 다음 귀절은 예수와 성부는 우리 속을 거처로 삼으심을 보여준다. 아버지와 예수는 우리 속에 계신다. 그가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 세금을 내게 해주시고 음식과 의복을 공급하신다. 뭐하러 우리 속에 들어와 계시겠는가? 우리를 돕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어떠한 병도 우리 속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속에 계시는 아버지와 함께 그의 모든 생명력과 성품을 함께 가지고 있다.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어떻게 예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 주시겠는가? 그의 말씀을 통해서다. 그 말씀을 우리는 섭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길에 뿌려진 축복을 찾는다.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내게 주어지리라고는 더욱 상상도 못했던 축복들이다. 그는 자신을 내 삶의 목자로 계시해 주셨다. 양식 공급자요 지키는 이요 나를 사랑해서 자기 목숨까지 주신 이다.

그가 오셔서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신다. 그의 사랑 성품이 우리를 지배한다. 그 사랑이 우리의 한 부분이 된다. 그는 우리 속에 자신을 세우신다. 사람들이 우리 속에 있는 예수를 보고 우리를 예수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하루는 누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니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주께서 하시지 않으면 도저히 될 수 없는 일인데!"

그가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하라. 그의 생각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해드리자.  말씀으로 마음을 설득하라. 그를 두려워 말라. 그가 사랑하는 것만큼 우리를 사랑할 존재는 아무도 없다. 그는 우리 삶의 힘이시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 그는 당당히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라 선언하신다. "아버지가 예수와 같다면 나는 만족한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다. 그와 함께 영원히 사는게 얼마나 큰 기쁨인가!

그러나 이제 또 다른 면을 보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소서." 우리는 예수와 하나이다.  동일시 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요 15:5). 이 진리가 어떻게 우리 속에서 자라는가? 우리는 예수의 열매맺는 부분이다. 우리가 가지라면 우리와 예수는 하나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여기서 몸을 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는 몸의 머리이시다. 우리는 그 몸의 부분들이다. 6:15도 보라. 내 손은 내 몸의 한 부분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한 부분이다. 그리스도와 나는 하나이다. 나는 모든 달콤하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고 선한 일을 하는 몸이다. 사랑의 열매를 맺는 몸이다. 나와 그리스도는 하나이다(요 15: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예수 믿는다고 다 제자는 아니다. 처음 믿는 신자는 어린 아이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9∼20). 우리는 자신에 관해 이토록 엄청난 말씀을 하신 분의 제자가 되려한다.

가지들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께로 가는 길을 비추어주는 빛이 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서 그것으로 사람들을 축복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려 한다. 예수가 만드신 것과 같은 열매 말이다.

지금 공부한 부분은 거의가 다 요한복음에서 나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번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 성령이 우리 속에서 일하실 것이다.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움직일 때에 그분은 반드시 일하신다. 그것을 배우고 생각하고 말하라. 그것을 명상하고 마음에 말하라. 그래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되고 저절로 실천하게 되고 그대로 살도록 말이다.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 내용을 교리로 생각하지 말라. 그대로 살기 위해서 배우라. 교리들은 감각으로 지배받는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성령으로 지배 받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