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양식의 변화를 바라보며...
다음은 뾰족탑 교회는 무서워요!라는 제목으로 한겨레21 2000.12.13자에 게재된 신문의 한 내용이다.
읽어보면서 오늘 우리의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며...
이제는 교회양식의 변화를 바라본다.
천편일률적인 고딕양식과 '체육장교회'의 상업성을 거부하는 종교건축의 다양한 시도들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 사람들은 영혼의 휴식처를 찾아간다.
인생이란 긴 여행 도중에 만나는 이 휴식처들은 바쁜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영혼의 울림을 들려주는 종교적 공간들이다. 돈과 쓸모에 매달리지 않고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 바로 종교공간이다. 종교공간은 다른 건축물과는 다른 강한 정신성을 건축에 그대로 반영하게 마련이다.
모든 것에 종교가 앞서던 과거에는 종교건축의 사회적, 건축적 의미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중요했다. 그래서 건축의 역사는 곧 종교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교건축은 건축사에서 중요한 주제로 시대의 건축을 대표해 왔다. 프랑스의 노트르담 사원, 터키의 성소피아 성당, 이탈리아의 산피에트로 대성당….
지역공동체의 터전으로 자리잡기 위하여
동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의 호류사부터 동남아의 앙코르와트와 보로부두르 유적까지, 나라와 시대별 건축의 정수는 바로 종교건축에 담겼다.
우리나라에서도 종교건축은 건축의 핵심이었다. 신라의 불국사와 지금은 사라진 황룡사를 비롯해 고려시대의 부석사와 수덕사, 그리고 현대의 명동성당과 성공회 서울교회까지 종교건축은 시대를 대변하는 건축의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종교건축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불교건축이 도시에서 사라진 이후 우리의 현대 종교건축은 교회와 성당으로 집중된다. 그리고 거리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교회와 성당의 모습은 거의 한 가지 모습뿐이다. 우뚝 솟은 높은 첨탑, 그리고 거대한 십자가, 붉은 벽돌이거나 전면을 가득 덮은 돌장식의 거대한 구조물들인 것이다. 밤이면 십자가에는 붉은 네온불이 켜지고, 마치 호객하듯 주변의 상업 간판들과 경쟁을 벌인다. 길가로 드러나는 앞면에는 온갖 장식과 커다란 간판이 집중되지만 길가에서 보이지 않는 뒷부분은 마치 공장건물처럼 스산하기 짝이 없다. 특히 일부 교회들은 높은 첨탑의 고딕양식만을 집착하면서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기는커녕 보는 이를 압도하듯 달려든다. 그래서 종교건축의 이런 문제점은 그동안 건축계 내부에서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건축가들 사이에서는 이런 천박한 종교건축물의 경우 건축적으로도 무가치하기 때문에 아예 논할 가치가 없다는 극단적인 평까지 나올 정도다. 또한 개신교 교회 건축의 상업주의적 경향은 특히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교회가 다른 상업건물들 못지않게 가장 좁은 공간에 가장 많은 수의 신자를 수용하려는 상업적 논리로만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이른바 '체육관 교회'로 불리는 대형 교회들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실제 너무나 유명한 한 거대교회 건물의 경우 저명건축가가 설계했지만 이 건축가는 자신의 작품 목록에 이 교회건물을 집어넣지 않았다. 건축주인 교회쪽에서 이미 건물의 모든 형태를 미리 정해놓은 뒤 건축가에게 그대로 따를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설계를 맡은 건축가로선 창의성과 정신적 지향점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채 건물 도면만 만드는 '기술자'로 전락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교회와 성당 건축에 새로운 변화의 싹이 조금씩 트고 있다. 그동안 비난받아온 과시적이고 유치찬란한 장식과 규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건축적으로 의미있는 시도를 담아내는 새로운 교회와 성당 건축물들이 하나둘씩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변 주택가와 조화를 이루는 포근한 종교공간, 그리고 지역주민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동체의 터전으로 활용될 수 있는 공간과 기능을 갖추기 시작했다.
'빈자의 미학'으로 세운 교회
서울 중곡동에 들어선 중곡동성당은 일단 겉모습부터 기존 성당이나 교회와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 시대 가장 유명한 건축가 가운데 한명인 승효상씨가 설계한 이 성당은 일체의 장식과 색깔을 배제한 무채색의 단순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건물 외벽은 모두 맨살콘크리트로 처리했고, 내부 역시 별다른 마감을 하지 않고 콘크리트 자체로 남겨둬 건물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다.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도 우아한 나무제단이 아니라 콘크리트 상자를 쌓은 듯한 단순한 형태다. 높지 않은 탑 위에 올라서 있는 자그마한 십자가가 없었다면 성당이 아니라 문화센터나 갤러리처럼 보일 정도로 성당 같지 않은 성당이다. 설계자인 승효상씨는 그동안 서울 경동교회와 당진 돌마루공소 등 우수한 종교건축을 설계했고 종교건축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온 건축가로 유명하다. 이 성당건물에서 승씨는 그동안 꾸준히 주장해온 특유의 미학론인 '빈자의 미학'을 시도했다. 일부러 장식을 없앤 '무장식'으로 종교공간으로서 긴장을 유발하는 동시에 현란한 장식과 빛깔이 신도들을 압도하는 대신 무채색과 빛만이 존재하는 공간 속에서 성당의 진짜 주인인 신도들이 더욱 부각되도록 연출했다고 한다. 높이의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는 경기도 시흥시 조남동에 올해 들어선 목감성당은 더욱 파격적인 성당이다. 무엇보다도 이 성당은 기독교 건물이면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십자가를 없앴다. "마을 사람들이 당연히 이곳이 성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 구태여 십자가나 네온을 달아 성당임을 상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김태우씨의 설명이다. 겉모습 역시 성당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다. 벽면의 창을 제한해 실내에서 빛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다른 기독교 건물과는 달리 이 성당은 건물 한쪽 전체를 마치 몬드리안의 추상화처럼 면분할된 유리창으로 훤하게 노출시켰다. 신도들과는 거리감을 느끼게 마련인 비신자들에게 성당이란 곳이 '따로 떨어진 공간'이 아니라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친숙하고 투명한 공간'으로 다가가도록 하겠다는 생각에서다.
또한 목감성당은 건물 중간중간에 개방공간을 배치해 신도들이 옥외모임을 하도록 여유를 둔 것도 특징이다. 설계자인 김씨는 "현대 종교건축은 현대인에 맞춰야 하고, 현대인들에게 종교공간은 친교와 공동체정신의 공유를 느끼는 곳이므로 그런 공간을 갖춘 기능적 건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예전의 종교건축물들과는 달리 요즘의 종교건축에서 이런 공동체(커뮤니티) 공간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 지역사회의 구심체로 사람들끼리 교류하고 모임을 가질 수 있는 역할이 현대 종교건축물에 더욱 필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천시 부평의 강성교회는 신도와 비신도의 구분을 떠나 지역 주민 모두의 사랑방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설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반영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신자건 비신자건 머물고 싶은 교회를" 건축가 홍순우씨의 처녀작인 이 교회는 겉모습은 다른 교회들과 비슷하지만 내부 구조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신도들이 교회건물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가장 접근성이 좋은 1층을 예배공간이 아니라 커뮤니티 홀, 즉 공동체 공간으로 꾸민 것이다. 교회의 핵심인 예배공간은 2층에 마련돼 있다. 황씨는 지역 주민들이 이 동네를 평생 살 곳으로 보기보다는 잠깐 살다가는 곳으로 생각하는 뜨내기 정서가 강하고 주변에 변변한 문화공간이 없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한다. "신자건 비신자건 머물고 싶은 교회가 돼야 교회가 지역사회를 치유하는 기능이 가능해지고, 덩치가 큰 교회보다는 지역사회를 향해 열려 있는 공간을 지향하는 교회가 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맥건축의 곽재환씨가 설계해 최근 문을 연 서울 역촌동의 제일영광교회도 곽씨의 첫 번째 교회설계작이지만 건축계로부터 새로운 교회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