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중생한 영의 실체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0. 17:39

이 부분이 전체 바울 계시의 절정이다.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이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실패자요 죄의 노예요 사탄의 도구로서 인간은 보이지 않는 영적 어두움의 세력에 의해 지배 되고 있었다. 그가 중생하면서 새로 창조되어 새피조물이 된다. 그리고 사탄의 가족에서 합법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인간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이것이니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 자신의 사랑을 타락한 인간에게 넣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더 이상 타락한 존재가 아니다. 중생한 사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며 새피조물의 머리이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진 사람이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오래된 죄의식, 타락한 삶, 옛죄의 삶 그리고 영적인 죽음에서 나온 악한 습관이 사라진다. 그는 새피조물이요 새로운 존재이다. 성부는 더 이상 그의 과거의 삶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그는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다. 그의 옛날 삶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잊혀졌다. 그대신 새피조물이 은혜 가운데 존재하게 되었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일을 맡기셨다. 우리가 오래동안 해왔던대로 정죄하는 일이 아니다. 화목하게 하는 사역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죄를 지적했다. 그들이 죄의식을 가지게 하였다. 약함과 실패의 의식 속에 살게 하였다.  생명 대신 죄를 설교했다. 하나님께서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는데도 심판을 설교했다.
이제 우리는 그 말씀을 가지고 있다. 그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우리는 새피조물이 되었다. 사랑으로 다시 창조되었다. 사랑이 우리의 영에 부어졌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동시에 생명이시다. 생명 자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 성품 곧 사랑 성품을 넣어주셨다. 자신의 성품을 부어서 새피조물이 되게 하셨다. 그 성품이 의요 거룩이다. 진리요 사랑이다. 모두 다 우리에게 부어졌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었다. 세상을 하나님께로 화해시킨다. 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하나님은 예수를 죄로 삼았다. 그래서 우리를 중생시켜 의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줄 화해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심판이 아니라 사랑이다.
예수께서 죄가 되셨다. 심판을 당했다. 그리고 그를 거부했더라면 우리가 당했을 모든 고통을 스스로 당했다. 그를 받아들임으로 우리는 그가 우리를 위해서 만들어준 모든 축복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 메시지는 인간의 이성이나 감각적 지식에 들려주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영에 들려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영에 계시해 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이성은 단지 오감이 전해주는 것만 이해한다. 그 밖의 것은 이성이 알 수 없다. 우리 영이 다시 태어나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면 아버지를 알게 된다. 그의 말씀을 통해서 그와의 교제를 즐긴다.
우리는 그와 같아지고 하나가 된다.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가 이 새롭고 아름다운 관계를 설명해 준다. 우리는 포도나무 생명의 한 부분이다. 포도나무 생명의 사랑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영은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실체를 누린다. 이성은 그것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말씀을 명상한다면 이성과 영이 서로 교제하게 된다. 중생한 영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영생을 받았기 대문이다. 그것은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다. 우리의 몸은 늙는다. 우리의 이성도 늙는다. 몸에서 모든 지식을 받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의 영이 몸을 지배한다면 이성이 늙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몸도 정력적이고 젊은 상태를 유지한다.
감각적지식은 감각이 늙음으로 함께 늙어간다. 중생하여 새로워지지 않을 때 감각은 신선함과 분별력을 잃는다. 중생한 영이 성장하려면 말씀을 명상하고 그대로 행동하고 그 말씀이 우리 속에서 살아 우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몇가지 사실
기독교는 하나님 아버지와 가족 간의 관계이다. 종교가 아니다. 죄가 용서받는 정도가 아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난다. 하나님의 성품과 생명을 받는 것이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이다. 로마서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는 그와 부활 생명 안에 연합되었다. 새피조물은 아담이 타락함으로 잃어버린 영역을 누린다.
에스겔 36:26,27,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인간은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마음이 새로 지어진다는 의미이다. 주께서 마음을 말씀하실 때 그것은 참사람의 영을 의미한다. 새 피조물이 되는 것은 구원을 통해 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다.
오순절에 일백 이십문도의 영은 새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새것"을 시작하셨다. 그들이 받은 것은 죄사함 이상이었다. 새 성품을 받았다. 그것은 사람과 사랑의 연합이었다. 새로운 질서였다. 고린도후서 5:1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들은 새로운 종족이었다.
새 피조물이란 표현은 전에 없었던 새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새사람은 첫 사람 아담이 새로운 존재였던 것처럼 전혀 알려지지 않는 존재이다. 새 사랑 성품은 이기심의 옛 질서가 그치고 새로운 사랑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새피조물은 하나님-사람으로 하늘에 의해서 낳아졌다. 그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 전에는 사탄에 의해 지배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