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 - 삼상 3:1∼4:1
하나님은 엘리 가문을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죄 용서와 복이 임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이처럼 제사가 중요하다면 그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 역시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라고 합니다. 제사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만나 주시고 그 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을 펼쳐 나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주변 그 어떤 나라와 비교될 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이스라엘이 마땅히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적으로 둔갑 당했습니다. 스스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적이 되어져 버렸습니다. 즉 원수가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거로 제사장들이 제사를 바르게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책망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 가문을 제사장 대열에서 삭제시키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엘리 가문이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 중에 하나가 바로 그 가정에 노인이 없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젊어서 죽게 해 버리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 제사장 가문을 버리시고 이제 하나님께 충실한 사무엘을 새 시대, 새로운 제사장으로 삼겠다고 합니다. 이제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을 열어 가겠다고 합니다. 여기에 사무엘이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1∼9).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여호와의 말씀의 음성을 들은 사무엘에 관해 1∼9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에 보면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이 사무엘이 성전에서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다"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말씀해 주시는 일이 드물었다는 것입니다. 계속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셔도 부족한 우리 인간인데 하나님께서 드물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엘리를 중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침묵으로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은 심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많고 그 교회를 다닌다는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희귀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고 한탄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비로소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신기한 것은 사무엘이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누웠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는데 사무엘은 엘 리가 부른 줄 알고 엘리에게로 갔는데 엘리는 사무엘을 부른 일이 없다고 하면서 돌려보냅니다.
그와 같은 사건이 세 번째 있게 되자 엘리는 그 부르심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사무엘에게 자초지종을 알려 줍니다.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라고 일러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였지만 사무엘과 그 시대에는 이제 비로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시편 7:49에 "우리의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 선지자도 다시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라고 하소연하는 시편 기자의 절규가 있습니다. 여기 "표적이 보이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은 하나님으로 안내해 주는 표지판 혹은 어떤 징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산 속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징표를 발견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암울한 어두움의 터널 속에서 빛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을 연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또한 "선지자도 다시없으며 이런 일이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 중에 아는 자도 없나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죄악을 범한다거나, 갈 길을 알지 못한 백성들에게 선지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더 이상, 다시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불행이 얼마나 갈지 아는 사람이 없는, 말 그대로 어두운 상황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우리가 살고 있는 교회와 가정과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은 아닙니까?
또한 아모스 8:11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 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함이 기갈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면 그것은 이 땅에서 굶주려 죽은 것 같은 고통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해 기갈을 당하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 집에 심판을 경고하십니다(10∼14).
다음으로 사무엘을 통하여 엘리의 집에 심판을 경고하신 하나님이 10∼14까지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마는 또한 "심판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본문 삼상 3:12∼13에 보면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내가 그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의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그의 아는 죄악"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 들였던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죄를 범하면 무심코 자신이 죄를 범했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범할 때가 많습니다마는 엘리의 아들이 범하는 죄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을 줄 알면서도 범한 죄악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주를 받을 줄 알면서도 본문에 보면 "금하지 아니 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의 범죄는 2:12에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했습니다. 이 불량기는 하나님 앞에 불량한 자입니다. 다음으로 2:17에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2:33에 보면 "회막 문에서 시중 드는 여인과 동침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죄로 홉니와 비느하스가 저주를 자처하여 심판을 받게 됩니다. 문제는 그러한 아들들의 죄를 보고도 금하지 않는 엘리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시대, 그 가정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러한 죄를 범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사무엘상 2:30 하반절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멸시하고 있는 것 같은 행동들을 하고 잇지는 않습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15∼18).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심판을 선포하라는 말씀에 15절 하반절에 보니까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어느 시대이든 하나님의 명령 따라 심판을 외친다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요나서의 요나도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두려운 나머지 다시스로 도망갔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요나로 하여금 선포하게 하고야 맙니다.
오늘 본문도 사무엘이 비록 어려서 엘리의 가정에서 심판을 외친 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끝내 하나님께서 선포하게 합니다. 18절에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엘리) 가로되 이는 여호와 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한 시대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고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지만 새로운 구원과 소망의 여명이 사무엘로 하여금 열게 하셔서 그 나라를 견고케 해 주셨습니다. 2:35에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는 말씀으로 축복해 줍니다. 이같은 말씀의 언약과 축복은 사무엘하 7:11절에는 다윗의 씨로 말미암아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3:24은 "또한 사무엘 때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고 합니다, "이때"란 어느 때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때입니다.
***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19∼4:1상)
본문 19절에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라고 합니다. 이제 점점 엘리의 가정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심판의 어두운 터널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롭게 드러난 것은 사람은 사무엘 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과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사무엘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서 사무엘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섭리만이 있을 뿐입니다. 즉 사무엘은 하나님의 손에 쓰임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해서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쓰임을 받는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제아무리 일하고 싶어도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써주지 않으면 우리들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에 우리들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우리들은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들은 붙들어 주십니다. 보호해 주시고 책임져 주십니다. 본문 20절을 봅시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온 백성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사무엘을 선지자로, 제사장으로 부르신 하나님은 또 사무엘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기록됩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엘리 제사장과 대조적입니다. 엘리 제사장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자주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습니다. 임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할 뿐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주 임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이 임합니다. 그 구원은 내 의지대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은 멸망과 구원이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음은 멸망의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능력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사무엘서 3장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구원과 은혜는 신약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목표로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무엘서의 복음입니다.
이같은 복음이 여러분들을 주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