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 창 49:24∼26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19. 16:58

본장은 죽음을 눈앞에 둔 야곱이 열 둘 아들들의 앞날에 대하여 예언하는 장이다.
본 장에 나타난 야곱의 예언에 나타난 특징은,
1) 12아들들의 나이순으로 되어 있지 아니하고, '모계별'로 되어 있으며,
2)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12아들 모두가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며,
3) 각 아들들의 죄와 선행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후, 그에 따라 각기 저주와 축복을 내리고 있으며,
4)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계시를 좇아 자식들의 장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야곱의 예언은,
1) 야곱의 입을 빌어 발해진 하나님의 음성이며,
2) 메시야의 강림을 중심으로 하는 선민 이스라엘의 미래사이며,
3) 노아의 예언으로부터 시작된 모든 족장들의 예언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의 구속사적 예언이다.

특히 오늘 본문은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요셉 지파'에 대한 기록이다.
야곱은 요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축복하고, 예언한다.
1)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2) 활쏘는 자가 요셉을 학대하고, 요셉을 쏘며,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팔이 힘이 있다.
3)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
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주실 것이다.

이같이 요셉이 자기 형제들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은 자기 속의 하나님을 철저하게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요셉은 어떠한 역경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자기 속에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서 살도록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축복이 오늘 우리의 축복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요셉에 대한 야곱의 축복을 보다 깊이 분석함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으로 삼고자 한다.

야곱은 요셉이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요,
그 가지가 "담을 넘었다"고 하였다.
야곱의 이같은 축복은 요셉이 받게 될 "풍성한 복"을 말한다.
샘 곁의 가지는 무성하게 마련이다.
샘의 한 구멍을 막으면 다른 구멍이 터진다.
이처럼 솟아오르는 샘의 물줄기는 결코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샘 곁의 나무는 비록 가뭄이라도 마르지 않는다.

야곱의 이같은 축복은 "요셉이 앞으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는 무성한 가지로 만들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요셉은 이제까지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미래에까지 연장될 것이었다.
요셉으로부터 두 족장들이 나왔다.
그는 이스라엘의 목자였다.
그가 지도자의 역할을 한 것처럼 그의 후손들도 그러할 것이었다.
그를 뿌리로 삼아서 후손들은 번성해 나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뿌리로 삼아서 번성했다.
그러기에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다.
하나님은 항상 그의 속에서 그를 통해 사셨다.
야곱은 이 사실을 말했고, 그것은 계속해서 그의 미래를 움직일 내용이었다. 즉 현재 그의 모습은 바로 미래 곧 먼 훗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요셉의 삶이 그토록 이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매순간을 하나님 힘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근원을 두고 사는 성도는 풍성한 복을 받는다.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그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듯이 풍성해진다.
☞ 불모지에 심은 나무와 샘 곁의 나무가 자라는 것이 다르듯이, "하나님께 근원을 둔 자"와 "세상에 근원을 둔 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차이가 있다.
☞ 가지가 담을 넘어가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복은 자기에게 주어진 영역이 좁아 보일 정도로 차고 넘친다.
이처럼 성도가 풍성한 복을 받을 때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풍성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풍성히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우리도 요셉과 같이 믿음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야곱은 요셉에게 강건의 복이 있어 대적의 공격을 강한 힘으로 물리칠 것을 말한다.
활쏘는 자가 요셉을 학대하고,
요셉을 쏘며,
요셉을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요셉의 팔이 힘이 있으니,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요셉의 형들은 시기와 질투 때문에 요셉을 죽이려 하였다.
요셉은 십여년간의 노예 생활과 죄수 생활이라는 역경을 겪었다.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하나님이 주셨다고 믿으면 참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요셉의 삶은 그렇게 수동적인게 아니었다.
그는 적극적으로 그 어려움들을 받아들이고, 정복하였다.

노예생활을 하면서 그는 전혀 노예가 아니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그는 죄수가 아니었다.
그 상황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주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지도자로 살았다.
그리고 결국은 현실도 완전히 바뀌어 모든 사람을 지도하는 존재가 되었다.
한마디로 요셉은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였고,
요셉은 그 역경 속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태양처럼 산 것이다.

이처럼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큰 복은 "강건의 복"이다.
강건하지 못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진다.
힘이 약해 늘 대적에게 시달리는 것처럼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럴 때 나중에는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본문은 믿음의 사람에게 "강건"을 약속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강건이 "전능자의 손을 힘입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스스로 강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강건케 하셔야 강건하다.
바울은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셨다"(딤후 4:7)고 고백했다.
사람은 육신이 강건할 때 정신도 강건하다.
강건한 사람이 대적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생을 산다.
강건한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다.
☞ 모세는 120세가 되어서도 그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기에(신 34:7), 이스라엘 백성을 무덥고 추운 광야에서 40년 동안 인도할 수 있었다.
☞ 갈렙은 85세가 되어서도 모세가 그를 보내던 날과 같이 강건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을 잘 수행할 수 있었다(수 14:11, 12).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강건케 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강건할 때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야곱은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예언한다.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고 에 대해 그 의미하는 바는 두가지이다.
1)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는 "전능자 하나님"과 동격이다.
따라서 요셉 가문의 번영과 강성의 근원이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뜻.
2)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는 요셉과 동격이다.
따라서 요셉이 전능자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뜻.

아무튼 요셉에게서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난다"는 야곱의 예언은,
☞ 요셉이 전능하신 분인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되는 능력을 부여받게 됨을 말한다.
☞ 요셉은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 요셉이 미움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고난을 이겨내고,
이스라엘의 부양자와 후원자가 되는 신령한 복을 받은 사실을 말한다.

요셉의 삶이 그토록 이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힘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활쏘는 자가 그를 죽이려 하였지만 도리어 그의 활이 강하였으며,
그의 팔의 힘은 넘쳤다.
이는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누리고, 영원한 산처럼 축복도 그러하였다.

요셉은 늘 "하나님의 힘이 자신을 돕는다"고 느꼈다.
요셉의 생은 "복의 근원으로서의 생"이라 말할 수 있다.
요셉이 가는 곳마다 복이 임했고,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는 가장 신령한 복을 주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온갖 좋은 것이 하나님께 다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세상에서 완전한 것을 찾기는 힘들다.
완전한 사람도 없고, 완전한 가치도 없다.
사람이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 중에도 완전한 것은 없고, 어딘가 불완전한 구석만이 있는 법이다.
완전함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완전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복도 완전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복"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세상에 있는 불완전한 것들을 사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복을 사모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 풍성하고,
강건하게 되며,
고난을 이겨내고,
복을 나누어 주는 신령한 자로 살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신령한 복을 사모하자.
이제 우리는 복을 나누어 주는 자로써의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