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시끄럽게 떠드는 노래 소리( 출 32:15∼20)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19. 16:56

어떤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젊은이들이 밴드를 통해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키며 찬양을 리더 해 갔습니다. 교회는 그리 넓은 곳이 아닌데 각종 악기 소리와 찬양 인도자의 소리는 스피커를 내 귀에 전달되는 소리는 차마 자리에 계속 앉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귀청을 때렸습니다. 악기 연주자와 율동을 하는 아가씨의 미니스커트 옷차림은 너무나 아슬아슬했고 보기도 민망한 분위기였습니다. 이것이 도저히 거룩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예배당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치고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흥분된 성도들의 찬양 소리와 시끄러운 악기 연주, 사회자의 고함 소리와 함께 교회는 말 그대로 시장 바닥을 연상할 정도로 "시끄럽게 떠드는 노래 소리"였습니다. 이 교회 목회자는 어떤 분이라는 말인가? 저런 모습의 찬양과 춤(율동)은 이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의 사상이라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서 무엇이 '예배'이고 '심령 부흥회'이며, '찬양'인지 저는 혼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찬양도 아니고 복음가도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모 방송국의 열린 음악회 보다 못했습니다. 어느 대중 가수의 집회 때 열광하는 청중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은 지나친 과민 반응이라는 말입니까? 이제 정리할 때입니다. 무조건 "모르고 그랬다"라는 말로 변명하는 핑계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광란의 춤과 시끄러운 노래 소리를 구약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서 현실을 진단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백성들의 조급함과 지도자의 타협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주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로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 24:12). 이 말씀대로 모세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으로 올라갔습니다(출 24:13). 모세가 산에 오르게 되자 구름이 산을 가렸습니다(출 24:15).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고 합니다(출 24:18).
산밑에는 모세의 형인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으로 갔지만 오래 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게 되자 백성들은 아론에게 몰려 아우성을 쳤습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출 32:1).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는 것이 백성들의 요구였습니다. 모세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출해 주셨고 홍해를 건너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이후 빨리 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백성들은 의심하고 많은 것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조바심에 사로잡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광야에서 고아 신세가 되는 것은 아닌가? 광야에서 다 죽은 것은 아닌가 라고 상상하면서 자신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아론에게 요구했던 것입니다.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에 대해 책망하기는커녕 군중들의 압력에 맞서 하나님의 편에서 그들을 경고하고 책망할 용기를 갖지 못하고 굴복했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요구에 하나님 여호와를 대신하여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아론은 자신이 먼저 주도적으로 백성들의 귀고리를 모았습니다(32:3). 또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32:4).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아론이 외칩니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5∼6).
금송아지 우상 앞에 단을 만들어 아론이 외칩니다. 여호와 앞에서 잔치를 벌이자고 합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쳤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보이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그들은 결국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살면서 다양한 애굽의 신들을 보고 목격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것도 애굽의 신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 앞에서 춤추고 뛰노는 것도 애굽 사람들에게서 보고 배운 것들이었습니다.
금송아지의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이미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서 떠났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있는 한 여호와의 임재는 사라진 것입니다. 그곳에서 제사를 드린들 그 제사를 받아 주시겠습니까?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교회에서 행해진 것은 아닙니까?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바치고 나서 먹고 마신 뒤 일어나 뛰놀았습니다. 여기 "뛰놀더라"는 히브리어 말은 술을 마시고 난 다음에 조잡스럽고 경망스러운 언어와 웃음, 방탕과 열광적인 춤이나 술에 빠질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네 백성 부패하였도다"(7)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네 백성"이라고 합니다. "내 백성"과 "네 백성"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네 백성이 부패했다"라고 하는데 "부패했다"는 말은 노아 시대에 사람들의 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서 파괴와 폐허, 그리고 멸망으로 달려감을 의미합니다. 그 때 모세는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12).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13)라고 탄원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말이 있을 법한 일입니까? 주님의 재림이 더딤을 보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고"(6) 있지는 않습니까?

2. 떠드는 싸움 소리로 들리는 노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7)라고 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옵니다.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호수아와 함께 내려오는데 산밑에서 아론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17절에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하여 부패하고 타락한 그들이 먹고 마시며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는 "떠듦"과 "싸우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이 소리는 우상을 숭배하면서 감정이 극도로 고조된 괴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들었던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찬양하는 소리였습니다. 이런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의 춤과 노래를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우상 앞에서 춤을 추고 시끄러운 떠드는 소리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찬양한다고 하지만 그 찬양은 하나님께 드려진 찬양이 아닌 경우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찬양하는 소리들이 마치 우상을 찬양하는, 떠드는 소리가 아닌지 심각하게 우리 자신들을 살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들의 현주소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눅 18:8).

3.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노래하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의 말씀을 받을 때 이미 백성들이 산밑에서 죄를 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시내산에 올라와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께 죄를 짓는 범죄 사실을 알고 있는 모세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18).
모세는 애굽의 바로 궁궐에서 40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문화와 우상을 숭배할 때의 모습과 그 행동들, 노래 소리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바로 우상에게 노래에게 소리인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노래는 아름다운 노래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거룩한 노래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극히 거칠고 혼잡스럽고 날카롭고 사람의 마음을 혼돈 가운데 빠지게 하는 노래에 불과했습니다. 노래라고 해서 다 똑같은 노래가 아닙니다. 우상 앞에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하나님께 노래한다고 해서 그 노래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기 보다 그런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무서움이 더욱 농도 짙게 다가올 것입니다.
오리려 그런 노래를 부를 때 원수들에게 조롱 거리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본즉 백성이 방자하니 이는 아론이 그들로 방자하게 하여 원수에게 조롱 거리가 되게 하였음이라"(출 32:25). 여기서 '방자하다'는 말은 몸과 마음을 풀어 느슨하게 한다는 말로서 제멋대로 놀아나 죄를 짓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방자한 모습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합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내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신 18:20).
선지자가 자기 멋대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씀을 거짓되게 선포할 때 반드시 죽게 되는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방자한 행위는 "음부의 행위"라고 했습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겔 16:30). 금송아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춤추는 행위(출 32:19)는 바로 방자한 행위로 반드시 죽음을 변치 못한 행동들입니다. 따라서 이런 방자한 행동들이 가져온 결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려 3천명이 죽게 되는 비극을 맞이했습니다(출 32:28).

말씀 묵상과 기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 모세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하나님께 진노하지 말아달라는 기도입니다.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출 32:12).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출 32:13). 14절에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