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5. 11. 16. 12:28
고아들 엄마로 산 `외국인 처녀`의 42년 참세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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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길에서 어떤 이는 돈을 모읍니다. 또 어떤 이는 장미를 모읍니다. 그러나 저희는 어린이를 모으고자 합니다. 사랑 받지 못하고, 친구도 집도 없는
그런 아이들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날, 영원한 나라에 돈은 갖고 들어가지 못하고 장미도 시들지만 활짝 웃는 어린이들만은 함께 데리고 들어갈 수
있겠지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 어느덧 4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제천영육아원 제인 화이트 원장은 꽃다운 나이 26세 때
처녀의 몸으로 혈혈단신 낯선 한국으로 와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제천영육아원은 제인 화이트 원장의 삶이 고스란히 바쳐졌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시티에서 태어나 가난하지만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낸 그녀는 어릴 때부터 어린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해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린이 선교사 교육을 받고 있던 중 신학교 동기인 잭 홈 목사로부터 도움 요청이 왔다. 잭 홈 목사는
당시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고아들을 돌보고 있었다.
한국에 온 후 `소년의 집` 등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하다가 당시 교통의
중심지인 제천에 버림받은 아이가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제천으로 내려왔다. 1963년 2월 13일, 첫 아기를 맞아 들였다. 드디어
엄마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낯선 땅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외국인 처녀의 봉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시선과 아이들이 생활하기엔 부족한 시설들. 셋방살이를 거듭하며 20년 만에 현재의 벽돌집을 구하기까지 숱한 고통을 겪었지만,
그녀의 곁에는 항상 희망이 되어준 아이들이 있었다.
제인 화이트 원장은 아이들이 비록 부모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새로운 삶을
꽃피워 주고자 입양사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가정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또 그 당시에는 내가 얼마동안
한국에 머무를지 몰랐죠."
그녀가 지금까지 길러낸 아이들은 1천2백여 명. 지금도 갓난아이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의 90여명이 그녀의
품안에서 자라고 있다. 해외입양사업이 중단되었던 1988년까지 733명(해외 672명, 국내 61명)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었고, 198명은
수소문 끝에 친부모의 품에 안겨줬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여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여자프로복싱 챔피언인 킴메서 씨도 2001년에 한국을 방문해 경기를 가진 후 대전료로 받은 1천 달러를 제천영육아원에 희사하기도 했다. 제인
화이트 원장은 4∼5년마다 한 차례씩 미국으로 건너간다. 입양된 아이들의 집을 방문해 상담해 주는 사후관리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여 이곳에서의 생활을 돌아볼 때, 밝은 웃음이 가득하고 여러 나눔의 손길로 만들어진 행복한 집으로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행복한 집, 제천영육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의 사랑이 고리로 이어져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제공 = 아산사회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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