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은혜

적립 점수제도와 종교적 달리기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9. 22. 09:31

천사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어디선가 휘발유를 넣어야 한다. 나의 경우, 이곳저곳에 들리지 않고, 가급적이면 한 주유소를 정해놓고 휘발유를 넣는다.

내가 가는 주유소는 학교를 출퇴근하는 편리한 지점에 있기도 하지만, 내 성격상 한곳에 마음을 정하면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휘발유를 넣는 일에 관한 한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정해 놓고 다니는 주유소는 적립 점수 제도라는 것을 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립 점수 제도란 주유하는 휘발유 값에 비례하여 일정한 점수를 주는 제도로, 내가 다니는 주유소는 천원 어치 휘발유를 넣을 때마다 1점씩을 가산하여 기록카드에 도장을 찍어준다.

예를 들어 4만원 어치 휘발유를 넣으면 40점을 준다.

휘발유를 넣으러 갈 때마다 나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는다.

운전석 옆자리 앞에 자그마한 서랍에 넣어둔 적립점수 기록표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꺼내든다.

그리고 그 동안 모아두었던 점수를 볼 때마다 자그만 기쁨과 아울러 약간의 흥분을 갖는다.


주유를 하고 있노라면 주유소 앞 벽면에 어지럽게 붙어있는 상품 선전이 눈에 들어온다.

적립 점수에 따라 받아 갈 수 있는 상품들도 다양하다,

참기름 한 병부터, 설탕 한 봉지, 농구공, 커피메이커, 쌀, 헤어드라이어, 러닝머신 등에 이르기까지 고객들의 호기심과 소유욕을 자극하는 물품들이 많다.

어느 상품을 가질 것인가 생각하면서 상상을 해본다.

내가 그 동안 적립해 놓은 점수는 커다란 설탕 한 봉지 어치다. 설탕을 받아다가 매주일 점심때마다 식사준비를 위해 수고하는 여전도회 집사님들에게 기증(!)을 하면 환호성을 하겠지?

아니면 좀더 적립점수를 보태서 요즈음 운동부족인 나를 위해 러닝머신을 받으면 어떨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주유소 직원이 다가와, "감사합니다. 3만원 어치 주유(注油)했습니다"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다. 고맙다는 말로 대충 인사를 건넨 뒤, 나는 적립점수 기록표에 30점을 더한다.

이제 조금만 더 주유하면 커피메이커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주유소에서 기다리는 동안 적립점수제도와 크리스천들의 신앙생활과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혹시 크리스천들도 신앙생활을 의식적으로든지 혹은 무의식적으로든지 천국행 적립점수제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상상력을 동원해서 나도 천국 가는 '신앙 적립 점수제도'를 생각해보았다.

다음은 우리가 신앙 생활하면서 흔히 무의식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교회 일'들의 목록들이다. 아마 이런 일들을 열심히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되거나, 아니면 천국 가는데 상당히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그렇게 고상한 목적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일 경우라도, 이러한 목록들은 적어도 교회의 목사님의 마음에 들 수 있게 하는 일들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이다.

 다음과 같은 적립점수를 기억해보자.

                      성수주일                     200점
                      십일조 생활                  200점
                      새벽기도회 참석              100점
                      남여 전도회 봉사              50점
                      구역예배참석                  50점
                      성경읽기                     100점
                      구제하기                     100점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         100점
                      성가대원으로 봉사            100점    총점   1000점


이상의 목록은 우리가 행할 때마다 적립되는 가상의 점수표이다.

1000점을 유지하면 자타가 공인하는 A급 크리스천이다.

그 정도를 유지하면 서리집사에게 안수집사로 승진할 때(?), 혹은 교회안의 각종 보직을 맡을 때 참고가 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또한 이러한 점수를 많이 적립하면, 안수집사에서 장로로 선출될 때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서있게 될지도 모른다. 누가 보아도 그런 사람에게 표를 던져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항상 그런 점수를 유지하고 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적자를 낼 때도 있다:

 성수주일을 하지 못하면 200점을 감산하고, 매일 성경을 읽지 못하면 다시 100점을 뺀다.

그러나 그러다가 구역예배라도 참석하면 50점을 가산하고, 잘 나가지 않던 새벽기도회를 한번이라고 나가면 어깨를 으스대면서 100점을 더한다.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좋게 보실까!" 하고 자기도취에 빠지면서 말이다.


그런데 항상 점수가 좋은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크리스천으로서 최소한의 체면을 유지하려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교회적 강박관념이 있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크리스천으로서, 혹은 교회의 직분자로서 우리는 그에 걸맞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은근히 조바심이 난다. 일종의 죄책감과 아울러 인간적 체면을 구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전 축구중계를 보느라 주일 오후 예배에 빠졌는데, 이것 때문에 혹시 하나님께 '찍히는 것'이 아닐까?

피곤해서 금요 심야기도회를 건너뛰었는데 혹시 하나님께서 '두고 보자' 하시는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가 모아둔 적립점수가 바닥을 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우리 마음에는 적립점수가 너무 빈약하다는 것은 하나님께 미움을 사는 일이 될 것이고, 그러면 무엇인가 불행한 일들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게 된다.


직장에서 승진이 탈락되고, 대학입시에서 자녀가 원하는 대학에 실패하고, 사업을 하는데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고, 교통티켓을 먹고, 매일하는 조깅인데 오늘따라 발목을 삐거나…

 자,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우리는 모름지기 일종의 불안한 죄책감을 갖는다.

 혹시 내가 주일을 빼먹고 동창회에 가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교회에 대해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십일조 헌금을 빼먹었더니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다보니, 보통의 크리스천들은 신앙생활이나 선한 행위들을 모름지기 자신의 죄책감들을 무마하기 위한 보상행위나,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일종의 아부성 행동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결국 이러한 예들의 근저에는 잘못된 신관(神觀)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을 은혜주시는 자(grace-giver)로 바라보지 않고, 회계장부 기록자(book-keeper)로 바라본다.

마치 위에서 말한 적립점수제도에 익숙한 사람들처럼, 그들은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행동한 만큼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렇지 못한 경우 그들에게 불행이나 저주를 주시는 분으로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그들에 따르면, 복은 선물(은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노력으로 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태 20장에 실린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에 관한 예수님의 비유는 이 사실을 잘 지적하고 있는 비유이다.

그 비유에서, 대부분의 품꾼들은 포도원 주인을 은혜 베푸는 분으로 생각하는 대신에, 노동의 대가를 주시는 분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


요즈음 비행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사람들은 비행 마일리지 적립제도를 사용한다.

 미주(美洲) 노선을 5번 정도 왔다 갔다 하면 미주 왕복 공짜 비행기표 한 장이 나온단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한 비행사를 이용하곤 한다.

적립마일리지를 높여 공짜 비행기표를 얻기 위해서이다.

천국까지 가는 거리가(마일리지)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 본다.

 주유소 적립 점수 제도처럼, 우리가 하는 교회의 각종 일들과 행위들   기도, 찬양대 봉사, 주일학교 교사 노릇, 예배당 청소, 식당봉사, 차량운행, 영아실 봉사, 안내위원   에 적립마일리지를 붙여, 천국 가는 비행기 티켓을 벌려고 애쓰는 우리들은 아닌지?

다행히도 천국까지 가는 거리는 너무도 멀고멀어서 도저히 평생 적립마일리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Somebody)가 천국 가는 비행기표를 공짜로 주지 않고서는 벌 수 없는 거리이다. '공짜!' 이것을 '은혜'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주시는 분의 입장에서는 '값비싼 공짜'요 '값비싼 은혜' (costly grace)1이겠지만!


교회는 더 이상 교인들로 하여금 "종교적 달리기"(religious running)2를 멈추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목사님들 역시 더 이상 교인들로 하여금 천국에 가는 적립마일리지 제도가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자신들도 그런 제도가 있는 줄 알았다면, 로마 천주교로 그들의 적(籍)을 옮겨가야 할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종교개혁이전 시대(Pre-Reformation Era)에 사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기분 좋게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넣는다.

조금만 더 있으면 러닝머신(running machine)을 탈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말이다.

물론 열심히 달려도(running) 천국까지는 갈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 류호준목사(천안대 기독전문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