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에 나오는 기독교서적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당하게 살것을 주창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파워있는 삶, 능력있는 삶, 영향력을 미치는 삶에 대해서 듣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말들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 만만", "당당"하게 살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요즈음 "파워 크리스챤" 등등의 구호로 강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경향을 보게 됩니다. 그런 제목을 가진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간과해서 안될 것이 있습니다.
과연 파워 크리스챤이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엘리트 코스를 거치거나. 특별한 능력을 과시하면서 어떤 선택된 직종에 오르는 사람을 말하는것인지. 그래서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고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것인지 헷갈리는 구호입니다.
일종의 변형된 형태의 "정치적 메시야 상"을 추구하는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지난친 기우일까요?
도대체 크리스챤의 강함은 무엇일까요.
왜 그리스도는 정치적인 파워를 행사하지않고 약자의 길을 가신것일까요.
어찌하여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나요. 왜 우리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시는 것일까요.
실제로 지나온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막강한 파워를 행사했던 시절에.
어찌보면 교회가 문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영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황금기에 교회는 그 순수함을 잃어버렸던. 그런 시절이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중세기가 기독교의 암흑기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때가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였던 시기였고 기독교의 문화가 꽃을 피웠고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했던 시기가 아니였던가요!!
그런점에서, 결코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은 자신만만하게 살라는 뜻은 아닙니다. 힘을 가진 자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것을 자랑하리라."
"그 몸으로 대할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모든 성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
이런 나약한 소리를 한 사람은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자신만만 했던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찌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렇게 큰소리 쳤던 베드로였습니다.
인자하신 주님은 이런 자신만만한 베드로가 여지없이 깨트려지기를 의도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넘어질것을 아시면서도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을뿐 그 이상은 붙들어 주지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1910년대 중국에서 귀하게 쓰임받은 노르웨이 여성선교사인 마리 몬센이 이런 유명한 고백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자신만만한 사람으로 본다. 내몸 어디엔가에 능력이 저장되어 있어서 필요할때마다 내 임의대로 끄집어 내어 쓰는줄로 알고들 있다.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나의 연약함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럼으로 나는 순간마다 나의 주님을 진심으로 앙망하는것 뿐이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철저하게 밑바닥에 떨어지도록 나를 거듭 거듭 깨트리셨다." 고 간증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선교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까지 낙심이 되어 선교사직을 사임할려고 까지 했을 정도로 사역의 열매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그 녀를 참으로 주님만을 앙망하는 자리로 점점 이끌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같은 진리는 모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공통되게 적용된 훈련이었습니다. 가장 고전적인 사례는 모세입니다.
모세는 참으로 자신만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한 사람"(행7:22)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열렬한 심정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리스도들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던" 사람입니다. 이런 모세를 하나님은 부스러기조차 없도록 가루로 만드셨습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나로 나의 곤고함을 보지 않게하소서."
이 모든 고백들을 종합해 볼때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만한자로 세우기 보다 철저하게 깨진자로 세워 주시는것입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하나님만 앙망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럼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직종. 어떤위치에 오르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느위치에서든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것이 중요하고. 이것이 진정한 힘이 되는것입니다.
이 같은 진리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종들아.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3:23)
종들이 무슨 파워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위치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진정한 증거가 되는것입니다.(딛2:10)
우리는 다시한번 나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확인하고. 또 그러한 연약한 모습에 실망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순간 순간 앙망하며 살아가십시다
이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인이 진정한 의미에서 파워크리스챤, 능력있는 그리스도인 이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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