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일 현명하다면
운하가 아닌 저수지로서의 면모를 보여 줄 것이다.
왜냐하면 운하는 물을 받아들이면서
사방으로 물을 다시 보내지만,
저수지는 기다렸다가 가득찰 때까지 자체적인 손실없이
흘러 넘치는 물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저수지와 같은 사람은 거의 없고
운하와 같은 사람이 많다.
이제 우리는 저수지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자.
끄레르보의 버나드(Bernard of Clairvau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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