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의 아주 작은 문제들에 대해서까지 세밀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시편 77:11,12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묵상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의 행위를 네 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본문을 살펴보겠습니다.
"11 곧 여호와의 옛적 기사를 기억하여 그 행하신 일을 진술하리이다
12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
여기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사,' '행하신 일,' '모든 일,' 그리고 '행사'라는 단어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는 네 단어들이 다 그게 그것인 것처럼 보입니다.
뭐 한글 뿐만 아니라 영어건 독일어건 현대어 성경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이 단어들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듭니다.
첫 번째와 네 번째에 나오는 '기사'와 '행사'라는 단어들의 원래의 뜻이 뭔 줄 아십니까?
놀랍게도 "방종한 행위들"(wantonnesses)입니다.
이 단어는 정숙한 여자라면 자신의 몸을 좀 사리는데 창녀는 자기 자신에게 대해 너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너무 충격적인 단어 아닙니까?
시편 기자는 이런 충격적인 단어를 쓰지 않고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하심을 제대로 나타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은 너무나 과도히 풍부해서 그것은 거의 방종해(wanton) 보일 지경이라는 것입니다.
아주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나누어주심에 있어서 대단히 헤프시다는(prodigal) 것입니다.
아마 천사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주님, 도대체 저런 형편없는 놈들에게 그 귀한 은혜를 너무 헤프게 베푸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얘들아, 너희는 부모가 아니기 때문에 내 마음을 모른다. 나는 저 녀석들의 아버지이다.'
둘째 단어, 즉 '행하신 일'로 번역된 단어의 뜻은 "희한한 일들"(extraordinaries)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 너무나 경이롭기 때문에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런 일들을 뜻합니다.
때로는 우리 삶에 있어서 면도칼로 잘라내 버리고 싶은 일들, 혹은 기간들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 기간만 없으면 내 인생은 훨씬 번듯해질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그 날들의 의미가 도대체 뭡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그 일들도 모두 주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토록 성령이 충만했던 시편 기자마저도 자신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일들의 의미를 다 깨닫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희한한 일들"이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 단어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우리말로 그냥 '모든 일'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단어의 원래의 뜻은 아주 하찮고 일상적인 "잡동사니 일들"이라는 뜻합니다.
어떤 일들은 우리가 보기에 주님이 하시기에는 너무 천하고 하찮은 일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구석진 데까지 신경을 쓰고 계신지 의심스러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그런 일들까지 일일이 행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삶은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품 안에 담뿍 안겨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장 작은 일에 있어서조차 우리가 마귀의 지배를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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