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에 도움될 예화

파랑새 병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2004. 4. 27. 15:38

파랑새의 이미지는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남구(南歐)문학에서 파랑새는 동경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을 상징한다. 중국에서는 달에 사는 서왕모(西王母)가 내려보낸 사랑의 천사다. 실제로 파랑새의 발에 편지통을 달아 사랑하는 사람과 애전(愛箋)을 주고 받았다는 사례도 자주 나온다. 이에 비해 한국의 파랑새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자비의 메신저다. 원효대사가 관음성지(觀音聖地)인 낙산(落山)을 찾아갈 때 세 차례에 걸쳐 신앙의 시련을 가한 것도 파랑새요, 또 눈에 막힌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혼자 남겨둔 다섯 살 난 아이에게 먹이를 먹여 살려낸 것도 파랑새였다.
북구의 파랑새는 행복을 뜻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행복이다. 메테르링크의 희곡 <파랑새>에서 가난한 나무꾼의 오누이 티르티르와 미티르는 그 파랑새를 찾아 헤맸지만 항상 저 멀리에만 있을 뿐 끝내 찾지 못하고 있다. 손에 잡혀지지 않는 '행복'을 찾아 한 곳에 안정 못하고 이 직장 저 직장 떠돌아 다니는 현대 젊은이들의 심리 현상을 병적으로 파악, '파랑새병'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정식 병명은 '파랑새 증후군(症候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심약한 아이'가 바로 파랑새병의 병원(病源)인 것이다. 희극 배우 채플린은 한 일터에 안정 못하고 떠도는 배역을 연기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어느 사회, 어느 직장에서건 당사자(當事者)이길 거부하는 이 정신병리에 대해 프로이트는 이미 '채플린 증후군'이란 말을 쓰고 있다.
사람은 소위 '자기주장기(自己主張期)'로 불리는 10-12세에 부모의 보호산(保護傘) 아래를 떠나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하는 것이 정상적인 성장임은 역사가 입증하고, 또 오늘날 문명국들에서 실천하고 있는 바다. 한데 우리 나라에서는 과보호가 20대 후반까지 연장되고 오로지 수험 공부만으로 벰트 콘베어에 태워진 채 사회 속으로 유입된다. 사회 속의 상대적 '나'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사회에 유입되기에 자기중심적이고 남을 깔보며 협조성이 없고 달라진 환경에 적응력이 약할 뿐더러, 끈기며 참을성이 전혀 없어 조그마한 자극에도 발칵 한다. 그런 심적 상태이므로 아무리 가까이 파랑새가 없다 한들 그것이 보일 턱이 없기에, 티르티르와 미티르처럼 이곳 저곳 헤매다가 지쳐버린다. 하지만 티르티르와 미티르는 결국 바로 지금 살고 있는 가까이에서 파랑새를 찾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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