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3,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 적부터 섬겨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양심에 복종할뿐 아니라 우리의 중생한 영을 성장시키고 우리 전체를 지배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삶의 모든 위기 때마다 영이 아버지의 뜻을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그리고 영의 인도를 이성의 기능보다 더 따르면 자금을 투자하는데나 사람을 고르는데 실수가 없다. 사랑으로 행함과 사랑의 영역에서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5:16∼18에서 영이란 말은 우리의 중생한 영이고 육은 우리의 감각을 의미한다. 전쟁은 감각과 중생한 영 사이에 일어난다. 요한복음 14:6은 그대로 살아있는 실체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만약 사람이 자신의 영을 성장시키면 진리의 실체 속에 행할 수 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열매를 즐길 수 있다. 갈라디아서 5:22은 중생한 영의 열매를 보여준다.
우리의 영이 무지와 굴레에 잡혀있었기에 친구들을 싫어하고 율법과 교리들을 싫어했다. 고린도후서 4:16,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은 후패해진다. 늙고 약해져간다. 그러나 내면의 사람은 영생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 계속적인 능력과 건강을 받는다. 그리하여 날마다 새로워진다. 내면의 사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안다면 더 오래 살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린도후서 5:4,5,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이 육신적 몸은 죽을 것이다. 이 죽을 몸이 영생 곧 하나님의 성품에 삼킨바 된다. 그러므로 5절로 이어진다.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의 보증이 바로 중생이다. 하나님은 우리 영 속에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진 증거를 맛보게 하셨다. 그가 말씀하신다. "네 몸이 이 생명에 삼키워지기 원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생명의 바다에 빠지게 하라"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 영에 하나님의 성품이 풍성히 주어져서 우리 죽을 몸을 완전히 지배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병없는 완전한 육신의 형태로 사탄의 세력이 지배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자들이 이렇게 자기 속에 있는 마음 속의 숨겨진 사람이 성장하게 만들어 자기 몸을 지배하게 하는 것을 보기 원한다. 그러면 육신은 하나님의 생명에 삼킨바 된다. 그러면 영으로 지배된다. 이 감추인 사람은 이성의 기능을 지배한다. 감각은 영의 지배하에 들어간다. 중생한 영이 몸을 움직인다.
예수의 이름은 살아있는 실체가 된다. 병과 귀신에 대한 그 권세가 먹고 마시는 것처럼 매일의 삶 속에 일부가 된다. 귀신의 세력을 지배하는 일도 매일의 실체가 된다. 그동안 하나님이 안에 계시는 마음으로 살아오지 못했다.
요한일서 4:4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고린도후서 10:3∼6,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이것을 이렇게 읽어보라. "우리가 감각 속에 행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감각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싸우는 무기는 감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에 속하였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강한 진을 파괴하는 능력이다. 감각에서 나온 생각과 경험들을 제거한다." 감각은 우리의 거짓 선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항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킨다.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
인간은 하나님 수준의 존재이다. 그 영이 하나님의 성품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시로 지배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자연인의 영은 사탄과 연합되었다. 그는 육신의 지배를 받는다. 감각이 그를 지배한다. 그의 이성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마음의 숨은 사람"을 알 수 없다. 이 사람은 감각적 지식으로 절대 알 수 없다. 자기 영에게 바른 위치를 주는 중생한 심리학자나 자신의 본성인 속사람을 알 수 있다.(고후 5:17)
그는 말씀을 통해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중생한 영에게 복종하게 한다. 말씀을 행동하고 실천하고 그대로 살지 않고는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없다. 자연인의 영은 감각에 의해서 지배당한다. 그러므로 오랜동안 거기 젖어온 신자들도 감각적인 마음을 넘어서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
신앙은 중생한 영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몰랐다. 신앙이 지배한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중생한 영의 열매이다. 그러므로 자연인은 신약적인 의미의 참된 사랑을 할 수 없다. 그의 사랑도 감각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중생한 영의 사랑은 감각을 넘어선다. 사랑은 이성의 기능에서 나온게 아니다. 영만이 사랑할 수 있다. 감각적인 육신의 방법으로는 신앙을 일으켜 갈라디아 5:22,23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수 없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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