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고민,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표현된 여러 명의 추천인들의 소리에 깊은 매력을 갖게 된다. 한번 잡으면 끝을 보고서야 내려놓을 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겨 가기는 쉽지 않았다. 최근의 동향을 다루고 있지만 철학적인 깊이가 심오하게 깔려있고, 진리가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고민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리하게 이해하여 정리하기보다 내용을 요약해 보기로 하겠다.
세 명의 야구 심판이 나온다. "난 그저 볼은 볼,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라 선언할 뿐이다"라는 전통주의자와 "내 눈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어떤 건 볼이고, 어떤 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하는 거지!"라는 상대주의자, "볼이니 스트라이크니 하는 건 내가 그렇게 선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급진적 상대주의자이다. 진리가 죽으면 오직 지식만 힘을 갖는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것 같은 철학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일이라 해도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은 윤리적 위기를 경험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윤리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많아진 진리는 결국 진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철학자인 니이체가 권력이야말로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말에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럴듯한 말로 꾸며져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한번 우상이 된 자리는 진실이 드러나도 추락되지 않고, 평생을 바친 진실보다 우위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품성은 사라지고 한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조차 기획사업처럼 되어버렸다. 심슨 재판과 클링턴 탄핵재판은 진실과 정의는 치밀한 전략에 의하여 밀려나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모더니즘은 그리스도교 시대와 유럽의 문명시대, 그리고 미국이 서방을 주도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에서 질서는 사라지고 자유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진실이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진정한 예언자의 사명조차 멈추게 한 것은 부조리한 세상에서는 수고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에 신앙과 이성이 완전히 다른 발판에 서게되자 진리가 죽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어지면서 힘있는 자만이 옳은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진리는 더 깊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결국 실재와도 부합하면서 생의 기쁨을 허락하는 철학을 찾아 나서게 됨으로서 상대주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회의의 무기를 자신에게 적용하게 하고, 반증을 통해 상대방을 공략하면 거짓의 실체는 드러나게 되어있다. 서구의 몰락은 니이체 탓이다. 그렇지만 나도 이 질서에 굴복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기본적인 진리를 왜곡하는 자임을 동시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방세계는 이미 퇴색되어버린 모더니즘과 위험천만한 포스트모더니즘사이에서 그 과거와 미래를 날릴 위험에 처해 있다. 따라서 진리를 자기 욕망에 맞춰버린 사람들은 맘에 들지 않으면 떼어버리는 '분철화'에 깊은 문제 의식을 갖아야하고, 욕망을 진리에 맞추려는 사람의 '고백'으로 돌이켜야만 희망이 있다. 참 자유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그 결과 또한 우리의 몫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철학적 흐름을 명쾌하게 꿰뚫어보는 현대적인 감각을 맛보고자 하는 이에겐 필수...
오스 기니스, 『진리, 베리타스』, 김병제 譯, 도서출판 누가, 2002년, 7500원
세 명의 야구 심판이 나온다. "난 그저 볼은 볼,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라 선언할 뿐이다"라는 전통주의자와 "내 눈에 그렇게 보이기 때문에 어떤 건 볼이고, 어떤 건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하는 거지!"라는 상대주의자, "볼이니 스트라이크니 하는 건 내가 그렇게 선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는 급진적 상대주의자이다. 진리가 죽으면 오직 지식만 힘을 갖는다는 말을 증명해주는 것 같은 철학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해 제비뽑기를 하는 일이라 해도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되기 전에는 관심을 갖지도 않은 윤리적 위기를 경험한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건강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윤리에 대한 목소리는 높아졌지만 더 이상 관심을 끌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진리를 말하는 사람만큼이나 많아진 진리는 결국 진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철학자인 니이체가 권력이야말로 모든 것의 핵심이라는 말에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럴듯한 말로 꾸며져 일약 스타의 자리에 오르고, 한번 우상이 된 자리는 진실이 드러나도 추락되지 않고, 평생을 바친 진실보다 우위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한 품성은 사라지고 한 인간이 된다고 하는 것조차 기획사업처럼 되어버렸다. 심슨 재판과 클링턴 탄핵재판은 진실과 정의는 치밀한 전략에 의하여 밀려나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모더니즘은 그리스도교 시대와 유럽의 문명시대, 그리고 미국이 서방을 주도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환되었다. 여기에서 질서는 사라지고 자유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살아있는 진실이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고, 진정한 예언자의 사명조차 멈추게 한 것은 부조리한 세상에서는 수고의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계몽주의 이후에 신앙과 이성이 완전히 다른 발판에 서게되자 진리가 죽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없어지면서 힘있는 자만이 옳은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진리는 더 깊은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것이다. 결국 실재와도 부합하면서 생의 기쁨을 허락하는 철학을 찾아 나서게 됨으로서 상대주의자들을 만나게 되는데 회의의 무기를 자신에게 적용하게 하고, 반증을 통해 상대방을 공략하면 거짓의 실체는 드러나게 되어있다. 서구의 몰락은 니이체 탓이다. 그렇지만 나도 이 질서에 굴복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인간은 진리를 추구하는 존재이지만 타락한 인간은 기본적인 진리를 왜곡하는 자임을 동시에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서방세계는 이미 퇴색되어버린 모더니즘과 위험천만한 포스트모더니즘사이에서 그 과거와 미래를 날릴 위험에 처해 있다. 따라서 진리를 자기 욕망에 맞춰버린 사람들은 맘에 들지 않으면 떼어버리는 '분철화'에 깊은 문제 의식을 갖아야하고, 욕망을 진리에 맞추려는 사람의 '고백'으로 돌이켜야만 희망이 있다. 참 자유에 이르는 다른 길은 없기 때문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그 결과 또한 우리의 몫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철학적 흐름을 명쾌하게 꿰뚫어보는 현대적인 감각을 맛보고자 하는 이에겐 필수...
오스 기니스, 『진리, 베리타스』, 김병제 譯, 도서출판 누가, 2002년, 7500원
출처 : 예수사랑 공동체
글쓴이 : 정상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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